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대통령관저 청와대 는 어떤곳인가
벌써 청화대 이전 반대 청원서가 2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말로는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는데 ...청와대 어떤곳인지 알아보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및 주거실 등이 있는 본관과 비서실·경호실·춘추관·영빈관 등 부속건물로 되어 있고 넓은 정원과 북악산(北岳山)으로 이어지는 후원(後園) 및 연못이 있다. 본관은 2층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靑瓦]를 덮어 ‘청와대’란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 곳은 일찍이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으로서의 별궁(別宮)이 있던 터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 경복궁(景福宮)을 창건하면서 궁궐 후원으로 삼아 이 곳에 연무장(鍊武場), 융무당(隆武堂), 경농재(慶農齋) 및 과거장(科擧場)이 마련되었으며, 왕의 친경지(親耕地)로도 사용되었다.
그 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안에 청사(廳舍)를 신축하면서 1927년 오운각(五雲閣) 외의 모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고 총독관저를 이 곳에 지었다. 청와대 본관은 바로 이 때 건축한 것이다.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미군정이 시작되자 이 곳은 그대로 군정(軍政)장관의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다. 그 후 1960년 4월 4·19혁명 후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이 경무대의 주인이 되자 곧 ‘청와대’로 개칭하였고, 1990년 프레스센터인 춘추관과 대통령 관저가 신축되었다. 1993년 8월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의 지시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이 기거하였던 구관은 철거되었다.
출처 청와대 [靑瓦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청와대(靑瓦臺, 영어: Cheong Wa Dae)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부(大統領府)와 관계된 행정기관을 말한다. 별칭으로 블루 하우스(Blue House)라고도 부른다. 집무공간인 본관, 공식행사공간인 영빈관, 주거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 장소인 상춘재, 비서 부속기구인 대통령비서실, 경호 부속기구인 대통령경호처, 대언론 창구인 춘추관 등을 포함한다. 과거 조선 시대와 비교하자면, 경복궁 근정전에 비교할 수 있다. 제한적인 관람은 가능하고, 주차장이 없어 북악산의 공영주차장이나 경복궁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 해야한다.
주요시설
본관
본관(本館)은 대통령의 집무 등에 사용되는 본 건물로 1991년에 신축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으며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다. 과거에는 수석보좌관회의도 이곳에서 열렸다.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고, 업무와 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 의전만을 위한 건축물에 더 가깝다는 비판도 존재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만 이곳에서 보기로 하였다.[2] 본관 출입시에 사용되는 청와대 정문은 11문이라고도 부르며, 국무회의 때 장관급 이상이 출입하는 곳이다. 출입증을 보이고 얼굴 대조를 거쳐 통과가 허용된다. 내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일부 공개된 바 있다.서쪽 별채인 세종실은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며, 동쪽 별채인 충무실은 임명장 수여 행사, 중규모 만찬, 간담회 등이 열리는 장소이다.
청와대 본관
영빈관
대규모 회의, 외국 국빈들 영접, 여러 공식 행사등을 개최하는 건물로서 1978년에 준공되었다.
관저
관저(官邸)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곳으로 1990년에 준공되었다. 청와대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내부 모습이 언론에 제한적으로 공개된 바가 있다. 준공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과 동시에 입주하였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시설 정비 사유로 취임 한지 3일째가 되어서야 입주하기도 했다. 이는 관저 준공 이래 처음이다.
여민관
여민관(與民館)은 청와대 참모들이 일하는 곳으로, 총 3동으로 나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에 '위민관'(爲民館)으로 변경되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무현 정권 시절 증축 당시의 이름이었던 '여민관'으로 환원되었다. 여민1관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대통령이 일상적인 업무를 보고, 수석보좌관회의 등이 열린다.
서별관
서별관(西別館)은 청와대 본관 서쪽에 위치한 회의 전용 건물로, 헬기장을 사이에 두고 춘추관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앞에 위치한 연풍문은 일반 직원들이 출입하고 외부인이 출입 절차를 밟는 곳이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 건물에서 열려온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를 '서별관 회의'라고 부른다.
상춘재
상춘재(常春齋)는 청와대의 정원인 녹지원 뒤에 위치한 전통 한옥으로,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곳이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부터 오찬과 만찬 장소로 쓰여오다가 1983년 전두환 대통령 당시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춘추관
춘추관(春秋館)은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되는 곳으로 1990년 9월에 준공되었다.
청와대 사랑채
청와대 사랑채는 청와대 또는 청와대 근처를 방문하는 관광객등을 위하여 만들어진 건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에 관한 것들 등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도 조성되어 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식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청와대의 역사와 옛 사진, 그리고 청와대의 비교 대상이 되는 경복궁의 옛 사진과 역사가 이곳 청와대 사랑채에 모두 전시되어 있고, 기념품을 판매한다.
칠궁
칠궁은 청와대 영빈관 바로 옆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사당이다.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셨기 때문에 "칠궁"이라고 한다. 청와대 보안 및 경비의 문제로 칠궁의 관람은 청와대 관람을 신청한 사람에게만 해설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청와대 건축 및 역사
청와대 지붕양식은 본채와 별채 모두 '팔작(八作)지붕'이다. 지붕에 올린 청기와 모습을 자세히 보면 수키와와 암키와 수막새와 암막새 등 일반 기와 이외에 잡상(雜象), 취두(鷲頭), 용두(龍頭), 토수(吐首) 등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장식기와를 사용했다.
고려때는 남경 별궁이 있었다.
조선 경복궁 후원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6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지금의 자리로 관저를 옮겼다.
1945년부터 1948년 때까지 미군 존 하지 중장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1948년 7월 24일부터 1960년 4월 26일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어 경무대라고 불렸다.
한국 전쟁 중 중앙청 내부가 화재로 대통령실이 없어졌다.
1961년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란 이름이 이승만 정권을 상징하며 부르던 말이고 부정부패의 이미지가 있어서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준다는 생각에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1년 9월 4일에 현대아산이 신관을 건축했다.
1993년 10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과거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이 살던 구본관을 철거했다.
2003년에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지하벙커)이 만들어졌다.
2022년 5월10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풍수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1990년대에 "청와대 터는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청와대 흉지(凶地)론'을 주장했다
1990년대 당시 다수의 풍수지리 연구가들은 청와대가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 뒤로는 북악산 등의 정기를 받고 있지만, 북악산에 많은 바위가 풍수에서는 '살기(殺氣)'에 해당하므로 청와대 터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조수범 행정학 박사는 한(恨) 많은 후궁들이 거처하던 7궁의 자리, 한때 무수리들의 임시무덤과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으로도 사용되었던 소외되고 버려진 땅이 청와대 터라고 소개했다.그는 청와대 터가 주변의 잡스러운 기운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복궁도 조선시대 내내 길지다 흉지다 이견이 많았다고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혹시 청화대 이전은 ...이유는? 00때문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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