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은 인간주의·인문주의(人文主義)·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도 하며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사상적·정신적 태도 및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이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 페미니즘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시대와 그 양상에 따라 크게 1세대·2세대·3세대 물결로 나뉜다.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에 대해 알아보자
Feminism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유래한 말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 즉,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등 ‘성(sex, gender, Sexuality)에서 기인하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현대 페미니즘의 선구자는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로 알려진 <여성의 권리 옹호(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를 작성한 영국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이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고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조직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됐는데, 이러한 흐름은 크게 1세대(여성의 참정권)·2세대(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평등과 성적 해방 추구)·3세대(계급, 인종 문제 등으로 확대)로 나눌 수 있다.
페미니즘의 변화
1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19세기부터 1950년대까지 전개된 페미니즘 물결을 가리키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일어났다. 이 시기 페미니즘의 핵심은 여성들의 정치 참여, 즉 참정권 획득이었으며 흑인들의 권리 신장 움직임도 함께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미국에서는 1870년 흑인들의 참정권 인정에 이어 1920년 여성들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 즉 서프러제트(Suffragette)가 등장했으며 이들의 활동 결과로 영국 정부는 1918년 2월 일정 자격을 갖춘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국민투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1928년에는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영국의 서프러제트
2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1960~1980년대까지의 페미니즘을 지칭하는데, 이는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벗어나자는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평등(노동 환경과 임금수준 개선), 가정에서의 평등,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배제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로 주장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특히 이 시기 사상적으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실존주의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3세대 페미니즘 물결은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이 백인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는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이 시기 페미니즘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며 다양한 집단과 계층·영역으로 확대됐으며, 이에 성소수자(LGBTQ)들의 권리운동도 함께 일어나기 시작했다.
피메일리즘과 에코페미니즘
페미니즘(feminism)은 ‘성적 차별’은 문화적인 산물로 양육의 관습과 입법화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피메일리즘(femalism)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요구한다. 피메일리스트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남녀의 차이는 결점이나 우열의 표시가 아니다. 여성은 제2의 성이 아니라 분리된 별개의 성일뿐이다'라고 강조한다.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은 생태학(ecology)과 여성주의(feminism)의 합성어로, 자연의 억압과 여성의 억압이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자연에 대한 파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지배 문화 속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에코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산업문명 속에서 여성과 자연이 차별과 파괴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시각에서 출발, 환경 문제를 비롯한 현대 산업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휴머니즘이란
15∼16세기의 유럽에서는 고대의 문예를 부흥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나, 중세 이래의 신학(神學) 중심 학문체계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대의 학자들 간에 ‘보다 인간다운 학예(學藝)를!’이라는 외침이 일어났다. 즉 고대의 학예를 부활시킴으로써 교회적 권위 아래 질식되어가는 자연스런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이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의미하는 후마니오라(humaniora)라는 말로 불리고,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연구함으로써 인간다움을 높이고 새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人間像)을 실현하려는 새로운 교육이념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이 ‘보다 인간다운’을 뜻하는 라틴어 후마니오르(humanior:인간적이라는 뜻인 humanus의 비교급)에서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라는 말도 같은 말이다.
예컨대 페트라르카는 젊었을 때부터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의 고사본(古寫本)을 열심히 수집하여 고대인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완성의 이상상(理想像)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이러한 휴머니즘의 정신은 르네상스의 운동이 확대되면서 이탈리아로부터 알프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 파급, 네덜란드의 에라스뮈스, 프랑스의 몽테뉴 등에 의해 새로운 인간성의 이상이 확립되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 자연스런 인간성을 존중하고, 이러한 인간성에 입각하여 지혜를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휴머니즘은 근대과학의 합리적 정신과 결부된다. R.데카르트는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진리를 방법적으로 탐구하였다. 신학자처럼 ‘은총의 빛’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빛’에 의해 세계를 인식하려고 노력하였고, 수학적 방법으로 학문의 확실한 기초에 도달한 지점(地點)에서 출발하여 인생에 유용한 지혜로서의 철학체계를 완성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생활의 지도, 건강유지, 기술발명에 관하여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사물에 관한 완전한 인식’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휴머니스트의 지혜의 이념이 새로운 과학이나 기술과 결부됨으로써 근본적으로 변질된 셈이다. 이와 같은 과학과 휴머니즘의 통일이라는 과제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계승되었다. 이 시대의 휴머니즘은 과학적 합리성을 단순히 자연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경제 등 각 분야에 걸쳐 추구하여 인간성을 한없이 확충(擴充)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과제의식(課題意識)이 18세기 계몽사상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의 관념’을 낳게 하였다.
18세기 후반에는 독일에서 뉴휴머니즘(Neuhumanismus)이라는 정신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독일 계몽사상의 추상적인 합리주의와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한 반항으로 생긴 것이며, 그리스적인 미(美)의 이상을 고취한 J.J.빈켈만을 선구자로 하여 T.레싱, J.G.헤르더, J.W.괴테, F.C.S.실러 등으로 이어지고 훨덜린의 시에서 완성되는 새로운 인문주의 운동이었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인 헤르더는 고전적인 인간성(Humanität)의 이상을 부활시켜, 이것을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이상상이라 하고, 이것으로 바이마르의 김나지움에서 실시하는 그리스 ·라틴의 학예습득에 의한 인문주의 교육의 기초를 삼았다.
20세기 초엽에 독일에서는 ‘제3인문주의’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고전 연구자들의 새로운 문제의식이 낳은 신인문주의 운동이었다. 또한 영국의 철학자 실러는 자기의 프래그머티즘적 세계관을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에 의하면 진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동과 경험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실제적 유용성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그는 세계의 설명원리(說明原理)는 신이나 절대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그 자신의 세계를 행동적으로 개혁해나가는 원리로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이상 여러 예가 보여주듯 휴머니즘은 각 시대에 따라 실로 여러 가지 사상형태로 등장한다. 여기서 공통되는 것이라면 겨우 ‘인간다움’의 존중이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인간다움’이 자주 정반대의 측면에서 추구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은 인간을 한없이 초월한 것, 즉 신이나 절대자와의 관계에서만 자기의 인간성을 비로소 실현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의 자연적 소질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참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과학이나 기술의 합리성을 철저히 추구하는 일이 결국은 인간성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류는 새로운 기술의 힘을 구사함으로써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틀림없이 한층 커다란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다른 사람은 그와 같은 행복에 대한 환상은 오늘날 이미 배반당했고,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기계문명의 주인공으로 만들기는커녕, 과학기술에 노예화되었으며, 세계의 합리화와 기계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과정이므로 이러한 추세에 저항하는 것만이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반론한다. 이와 같이 현대의 휴머니즘은 혼미상태에 빠져, 그 지향하는 바는 정반대의 방향으로까지 갈라졌다. 다같이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해도 그 인간성을 어떤 방향으로 확충해 나가는가가 문제이다.
‘인간다움(humanitas)’이란 말을 맨 처음 사용한 것은 키케로라고 하나, 그의 후마니타스란 것은 반드시 인간성의 이상(理想)의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인간다움을 나타낸다. 그것은 문명인만이 가질 수 있는 ‘우아함’ 정도의 뜻이었다. 로마인은 ‘인간다운 인간(homo humanus)’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본시 ‘이방인(homo barbarus)’이라는 말과 상대적인 의미에서 쓴 말이다. 즉 이방인은 풍속습관이 다르고 문화적 교양이 낮은 야만인인 데 비해 자기들은 그리스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교양을 갖추고 있고 또한 로마인으로서의 모든 덕(德)을 갖춘, 세련된 인간이라는 자부심이 이 말 속에 담긴 것이다. 1537년 로마 교황 파울루스 3세가 인도인과 흑인, 아메리카대륙의 토착민들을 ‘참의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회칙(回勅)을 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된다.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풍속·습관·사상이 자기들과 같은 인간만을 인간다운 인간이라 생각하고, 그 밖의 인간을 모두 인간의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독단적인 사고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휴머니즘의 본질은 그러한 자기중심주의·자국중심주의(自國中心主義)에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기를 초월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휴머니즘 자체를 초월한다’는 것이 바로 휴머니즘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휴머니즘 [humanism]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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