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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지성 이어령 별세 그는 누구인가

by 아이루스 202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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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지성 이어령 별세 이어령 그는 누구인가

이어령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화여대 명예석좌 교수)이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활동
1934년(호적상) 충청남도 아산에서 출생한 고인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이화여대교수역임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했고 퇴임후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1980년대
88서울올림픽 때는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개회식 마무리를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의 등장으로 꾸미면서 정적과 여백의 미학을 전 세계에 제시하기도 했다.
1980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일본 동경대학에서 연구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소의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고인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장관에 취임 후 국립국어원을 세워 언어 순화의 기준을 제시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문화 영재 양성에도 기여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일찍 파악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표어를 제시했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융합한 ‘디지로그’란 신조어를 내놓으면서 현실 변화에 창조적으로 대응했다.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한 문명전환의 시기에 누구보다도 앞서 디지털 패러다임의 한계와 가능성을 몸소 체험한 얼리어댑터였다.

저서
고인은 60여년 동안 약 130여 종의 저서를 펴냈다.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젊음의 탄생',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등이 있고, 어린이 도서로는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시리즈 등이 있다.

종교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린 고인은 무신론자였지만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변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을 담은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내며 생명과 영성을 언급하며 새로운 글쓰기에 나서 주목받기도 했다.

질병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항암치료 대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등 집필에 몰두해왔다. 지난해 김지수 기자가 출간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는 고인이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해 울림을 줬다. 책에는 고인이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으니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또 그해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에 조시(弔詩)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로 추모하며 국가장의 유족 측 장례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족및 가족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지역 검사로 일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장례절차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신문기사 인용 함


지성에서 영성으로
요즈음 나는 70평생 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삽니다. 세례를 받은 것과 시집을 낸 것이 그렇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면 망령이 났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그것을 점잖게 알츠하이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꼭 그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은 한 가지이지만 묻는 사람들의 말투는 제각각 다릅니다.

예수님을 이웃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하는 안티 크리스천들은 경멸조로 묻고, 카뮈의 경우처럼 신 없는 순교자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은 배신자를 대하듯 질책하는 투로 말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금시 혀라도 찰 듯이 혹은 한숨을 쉴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예수쟁이 됐다면서-"라고 내뱉듯이 비웃습니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누구도 내 면전에다 대고 '글쟁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어느새 나를 '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따금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욕쟁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아요. 화내지도 않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갑자기 성인이 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나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에 이미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도 거북한 무엇이 암종처럼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가 봅니다. 겉으로는 강한 싸움꾼인 척하지만, 옆에서 누군가 한 마디 훈수를 하고 조금만 역성을 들어주면 금시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약한 무신론자들인 겁니다.
이어령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중


2007년 기독교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김승옥과 함께 기독교로 전환한 대표적인 한국의 무신론자 지식인이다 이어령은 원래 무신론자였는데다가 1970년대에는 기독교계 쪽 사람들과 논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 그는 무신론편에 섰었다. 그런데 노선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어령이 이렇게 기독교인으로의 변신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딸인 이민아 목사와 관련된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2010년 출간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는 그 과정이 보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교토에서 생활하는 동안 느꼈던 고독이 신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하와이에서 살던 이민아 목사의 실명 위기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을 굳히게 된다. 현재는 종교를 주제로 한 강연이나 인터뷰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실명 위기 사건을 대강 말하자면 이렇다. 당시 갑상선암이 재발해 있던 딸이 설상가상으로 실명하게 되자 이어령은 "내 딸에게서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내 남은 생은 당신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는 기도를 올리게 되는데, 그 뒤 놀랍게도 7개월 만에 딸의 망막박리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간증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사건에 관해 이민아 목사는 "아버지가 나더러 간곡히 부탁하셨다. 절대로 밖에 나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모든 사람이 널 비웃고 우리를 박해할 거라고. 기적은 구제의 사인이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지 않으냐고 하셨다."고 증언한다.

이후 당연한 일이겠지만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강신주의 경우 "이어령의 보수성은 기독교로 넘어간 데서도 알 수 있어요. 인문학자가 어떻게 종교를 가져요? 인문학자는 고통의 폭이 더 넓어야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데, 그만큼 고통스럽기 전에 교회에 가는 거예요. 그럼 안 돼요. 인문학자는 신을 믿는 순간 글을 쓰면 안 돼요. 왜냐하면 신에게 구원받고 위로받기 이전에 겪어야 될 고통들이 있거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강신주는 이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수많은 종교인 인문학자들의 존재는 차치하더라도, 글 자체의 논리가 허술하기 때문.

신빙성이 약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이어령이 아버지의 애정을 적게 받고 자란 딸을 위한 (그것도 암 투병 중이므로, 어쩌면 딸이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는) 선택으로 볼 여지도 있을 수 있겠다. 김정운은 그의 책 「남자의 물건」에서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했다."고 쓰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사망했지만 아버지가 기독교로 전환한 뒤부터의 마지막 5년간의 부녀관계는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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